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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뮤지컬 ‘웃는 남자’ 박강현 “더 나은 세상 꿈꾸는 그윈플렌과 닮은 나”

기사승인 2020.02.28  1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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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웃는 남자’ 초연 무대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당시 캐스팅은 무대에서 난다긴다하는 배우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뮤지컬 제작사 EMK가 총 5년의 제작 기간과 사상 최대 금액 175억 원을 투입하며 “이 이상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라고 총력을 다했다. 그만큼 박효신과 수호의 캐스팅은 누구라도 수긍해야 했고 그사이 이제 막 신인 딱지를 뗀 듯 보이는 박강현의 등장은 새롭고도 용감했다. 박강현은 당시를 생각하며 “무서웠다”면서도 더 나은 이야기를 전하려 노력하는 기대주를 자처했다.

Q. 재연에 오르는 기분은?

재연 확정이 됐을 때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두근거림이 더 컸다. 이번에 장면들의 순서가 바뀌면서 그윈플렌의 여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됐다. 창작 초연을 제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 캐릭터의 깊이를 더 할 고민만 했고 열정적으로 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저라는 사람도 1% 정도는 깊어지지 않았을까. 데아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과 이 세상을 나의 지혜로 바꿔보겠다는 의지 등 모든 것이 강력하고 깊어졌다고 느낀다. 했던 작품이니 여유롭고 수월할 줄 알았는데 체력이나 심적으로 재작년보다 훨씬 힘들다. 힘든 만큼 결과물은 조금은 더 좋지 않을까.

Q. 초연에서 호평이 많았던 작품, 자부심이 있을 것 같은데

처음부터 영혼을 갈아 넣어 진짜 열심히 했다. 작품마다 그렇지만, 창작 경우에는 훨씬 더 힘들다. 만들어놓으면 바뀌고 더 나은 게 나오면 또 바뀐다. 그래서인지 더 애착이 갔고 이 작품으로 인해서 상도 타고 저란 사람을 많은 분이 알게 된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Q. 체력과 심적으로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가 더 있을까?

커튼콜에서 가장 크게 느낀다. 보러 온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가는 자리인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겠다. 그 말인즉, 그만큼 다 쏟아부었다는 거다. 커튼콜에서 그만큼 힘들었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재작년에도 힘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니까 더 쏟아붓는 것 같다. 온 마음과 진심으로 하는 건데 옳은 방법일까 고민도 가끔 한다. 이렇게 힘든 게 맞나? 근데 벌써 요령껏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무대포로 부딪히는 것 같다. 형들도 힘들다고 하는데 제가 특히 힘들어하는 것 같다.

Q. 초연했을 때 같은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인기가 엄청났다. 그 사이에 여러 작품을 하면서 팬도 생기고 좌석 수도 채워지며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했다는 느낌이 있나?

무서웠다. 부담 안 느끼려고 하는데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좀 더 잘하려고 하는 것 같고 ‘웃는 남자’면 박강현이라는 배우를 각인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좌석 상황은 잘 모르지만, 초연보다는 저를 아는 사람이 늘어났을 테고 ‘웃는 남자’ 영화를 보고 오는 분들도 있더라. 신기하고 감사하다.

Q. EMK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예술에서는 한국 뮤지컬 수준을 올려놓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인물 간의 서사에서 구멍이 있다. 주인공은 그윈플렌인데 본인이 생각하는 나의 서사는 무엇일까.

가장 아쉬운 부분은 타이틀 대사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의 지옥으로 세워진다’인데 극 중 가난한 자의 지옥이 안 보인다. 가난한 자들의 지옥이 보여야 메시지가 관객에게 와닿을 텐데 그런 것조차 함축되어있다. 극 중 공연하는 캐릭터들도 가난한 자들인데 그 사람들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보고 ‘그래,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들을 위해 바꾸겠다’라고 저는 눈으로 정말 표현하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한정된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심을 다 하는 것밖에 없다. 전개가 빠르고 한정된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 시켜야 하는 거다. 4시간 공연이면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고, 영화였다면 효율적으로 컷 전환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것도 한국 뮤지컬 발전의 과정이 아닐까.

Q. 연출부에 의견을 내고 반영된 것이 있나

항상 소통하는데 효율적으로 잘 만드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 장면과 대사를 바꿔보는데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장면으로 만들면 느낌이 다르다. 연출님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처음에 조시아나 여공작이 공연을 보고 와서 긴 스피치를 하는데 대사 순서를 제가 바꿨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은 ‘모두의 세상’을 부르기 전 독백은 “그래, 난 그윈플렌이야, 하지만 이젠 클랜찰리 공작이기도 해. 이제 내 운명의 의미를 알겠어. 그래 내가 바꿀 수 있어”라는 대사도 순서를 자연스럽게 바꿨다. 양준모 배우는 지금도 집에 가면 계속 공연 생각을 하더라. “오늘은 이 장면에서 이렇게 해보자, 이렇게 하면 살지 않겠니”라며 매일 뭔가 가져온다. 고맙고 본 받을 만 하다. ‘웃는 남자’는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Q. 자기 할 일보다 작품 전체를 보는 사람 같다

작품을 대할 때는 원래 작품만 생각한다. 전 안 보여도 된다.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만 관객에게 잘 전달된다면 제가 돋보이고 싶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 그윈플렌은 돋보여야 하는 캐릭터다. 저의 여정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숙제하는 느낌이라 어렵다.

Q. 조시아나 역을 맡는 두 배우가 다른 느낌이다. 호흡이 다른 점

신영숙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저를 끌어당긴다.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만한 강력함이 있다. 김소향은 작은 체구에서 오는 귀여운 면이 있는데 유혹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다. 그런 점이 가장 큰 다른 점 같다. 혹하지만 넘어가지는 않는다. 여자가 저에게 그렇게 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정했다.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림에 혹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숨어 지내왔고 남들과 떨어져 지내왔기에 내가 가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데아를 향한 마음은 사랑을 뛰어넘은 너무 사랑해서 나보다 더 소중한, 그가 나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윈플렌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현실에서는 저보다 더 사랑하는 건 없다. 제가 있어야 뭔가가 있는 것이니까. 데아는 환상 속 유니콘이다. 그런 정도의 로맨티스트는 아니다. 친구들 울고불고하는 거 보면 가슴 아프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괜찮아 질 거면서... (웃음)

Q. 급속도로 성장한 만큼 배우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보기에는 빠르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 많이 배워가는 과정이고 성장하는 과정이다. 해야 할 것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은데 과분하다. 저를 롤모델로 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하는 것 같다. 빨리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는 것은 인정합니다.

Q. 오디션 에피소드가 있다면?

자신 있는 것은 떨려서 못 보고 자신 없이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되는 경우도 있었다. ‘웃는 남자’가 그런 것 같다. 2017년 5월 ‘라스트 키스’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최종까지 갔었다. 그때 저라는 사람을 처음 제작사에서 알게 된 거다. 그때 안 봤다면 ‘웃는 남자’를 못할 수도 있었다. ‘라스트 키스’도 자신이 없었는데 제가 생각해도 잘했다. (웃음) 김문정 감독님이 ‘처음 보는 애인데 괜찮네’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한세대 교수님인데 수업 중에 “너희 박강현 아니? 걔 괜찮더라”라고 얘기했다고 친구한테 들어서 뿌듯했다.

Q. 도화지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제 입으로 그렇게 얘기한 적 있다. 좋다. 특별한 특징이나 특색이 없는 걸 수도 있는데 그냥 옛날부터 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딜 가든 잘 묻어가고 눈에 띄지도 않고 물 흘러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잘 봐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다.

Q. 딕션이 정확한데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

공연에서는 관객 보라고 하는 거지만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거다. 정성화 형님이 길을 가다가 어느 사람과 시비가 붙었을 때 싸우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구경꾼에 둘러싸여서 내 말이 맞는다는 것을 나랑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꾼에게 인정받게 하면 내가 이기는 뉘앙스라고 하더라. 나는 앞사람에게 말하는데 모두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의지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정확하게 알고 말하면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글 장단음이 있는데 그런 것을 신경 쓰고, 가끔 빠르게 얘기하면 잘 안 들리는 것은 약간 느리게 얘기하는 것 같다.

Q. 지금까지 했던 공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배역이 있나?

어떤 역할을 하든 저와의 교집합을 찾아서 만들어가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편했던 역은 그윈플렌이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적당히 짓궂다. 슬픔도 가지고 있고 나은 방향으로 가려는 열정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창작 초연이라 제가 만드는 대로 캐릭터가 되어가니 편했던 것 같다.

Q. 연출가는 배우 박강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연기를 너무 잘한다. 배우도 했었다. 한국에서 작품을 많이 하면서 한국화가 많이 된 것 같다. 감성적이고 섬세하다. 디렉션에서 본인이 원하는 그림이 맞아떨어질 때까지 연습한다. 몇 번 하니 그림을 어느 정도 알겠더라. 연출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연부터는 수월했고 연세가 많은데 열정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분이다. 한 번씩 제 머리를 때리신다. 우리나라는 머리 때리면 정색하는데 외국은 웃으면서 앞머리를 때리나 보다. (웃음) 로버트가 한국인이었다면 편하지 않았을 텐데 좀 더 편하게 작품을 했다. 로버트가 이번 재연에 두 번째 공연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완벽한 공연을 봤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표현해줬다”라고 말해줘서 감동적이었다. 그러면서 머리 한 대 때린 것 같다. (웃음) 눈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것 같다. 덕분에 영어도 조금 늘었다.

Q. 차기작은? 맡고 싶은 배역이 있나?

일단 쉴 것 같다. 제가 할 만한 것을 리스트를 뽑고 있다. ‘팬텀’ 해보고 싶다. 20대는 라울, 30대는 팬텀.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싶다. 손가락 운동밖에 안 한다. 체력, 근력 모든 것을 향상시켜야한다. 항상 오롯이 쉰 적은 없는 것 같다. 매체도 시동을 걸어볼까 하지만 아직이다. 시작이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도 제일 해보고 싶긴 하다.

Q. 미라클라스 활동은 이어가나?

새롭게 개편돼서 할 것 같다. 얼마 전 팬분이 ‘웃는 남자’에 커피차를 보내줬는데 모니터에 내 모습이 팀 전체 놀림거리가 됐다. 저를 보러 와주신 분에게 2시간 동안 만족할 시간을 주고 싶었는데 또 하게 된다면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뜻깊은 시간이었다. 하고 있으면서도 ‘박강현이 좀 컸구나’라고 느끼면서 지금 누리고 있는 게 현실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개인 콘서트는 10년은 접어둘 것 같다.

Q. 자존감이 대세. 내면을 어떻게 가꾸나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나치게 피곤하거나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너무 피곤한데 출근할 때. 중학생 때 학교 가기가 너무 싫은 거다. 내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아침에 너무 피곤했다. 역대급이었다. 공연하면서 피곤하니까 이번에는 사라지는 것보다 이러면 안돼하고 순간적으로 박차고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아닌 초인이 되는 것 같다. 엄청 추운 겨울에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자신이 너무 나약해 보여서 찬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아도 샤워를 하고 나오면 밖에 나가도 몸에 김이 나면서 따뜻하다. 스스로 강해지는 거다. 가끔 스스로 질문하면 도움 될 때가 있다. 고민해도 머릿속으로만 고민하는데 입 밖으로 혼자서 내뱉고 내가 들으면서 답을 내리면 명료하게 답이 나올 때가 있다.

Q. 가장 힘들 때 한 질문이 있다면?

학교 졸업 앞두고 오디션에서 잘 안 될 때였다. 집에 걸어가면서 고가도로에서 혼자 질문을 내뱉으면서 어차피 내가 하고 싶다고 내가 선택한 일이고 몇 번 안 된다고 포기해버리면 정말 의지도 없는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할 거냐, 끝까지 선택한 길을 가보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당장 눈앞에 아무것도 없고 오디션도 떨어지고 의기소침해 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 하겠나, 그런 식의 대화를 했었다. 혼자서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점이 그윈플렌과 닮아있고 제가 은근히 장난이 많다. 아재 개그는 잘못된 정보다.

Q. 나의 좋은 신념을 통해 끼치고 싶은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저는 항상 나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저의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에게 단 한 명이라도 공연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전달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매 공연 그래서 진심을 담아 하는 것.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확인 못 했지만, 누군가는 공연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중3 때 교회에서 처음 기도할 때 할 게 없어서 세계 평화를 기도했다.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그런 문구를 봤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면 이 세계에 전쟁이 없을 거라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개를 보면 너무 예쁘고 마음이 착해지더라.

Q. 마지막으로 서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박강현의 그윈플렌이 마지막일 수 있다. 제 성대가 좀 더 젊을 때 보러 와달라. 그윈플렌이 나올 때 좀 더 관객의 마음에 잘 스며들 수 있게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가져보면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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