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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가능을 형용하다,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

기사승인 2024.08.14  17: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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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영·양민정 공동연출 ‘2024 경기예술지원’ 선정작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 (사진_김혜림)

불가능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늘 그것은 우리 내면에 만연하다. 닿지 않는 것들에 닿고자 하는 욕망, 현실과 충돌하면서 닿지 않는 갈급과 초조에 목이 졸리는 그 결핍의 감각들. 그 형용할 수 없이 들끓는 것들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늘 ‘어딘가’로 나아가려 한다. 결국 닿을 수 없는 그 ‘어딘가’를 좇으며, 내달리거나 침잠하거나 도망치는 내면의 방황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 늘 아우성치는 내면의 목소리들을 잠재울 수도 없다. 그것은 차마 형용하기조차 힘들어 억누를 수밖에 없는 욕망의 목소리다.

이 형용하기 힘든 불가능을 어떻게든 형용하려는 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내면의 분열하는 목소리들을 과감히 증폭하고,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완벽’으로써 불가능한 욕망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8월 10일, 수원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초연한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Six Impossible Things)’이다.

인간 내면의 욕망, 총 6장의 다원예술로 형상화

‘여섯 개의 불가능’은 거문고 솔리스트 김민영, 아트디렉터이자 작가인 양민정,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강대운이 공동연출하고, 안무가 이고운이 참여해 완성한 다원예술공연이다. 참여진의 이력과 작품 세계가 제각기 다른 만큼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음악과 퍼포먼스, 이미지, 영상, 안무와 같은 다양한 예술 요소들이 총 6장에 걸쳐 다채롭게 혼합된다. 그 시도는 낯설 만큼 과감하고 파격적이다. 여섯 가지 욕망(사랑, 모순, 순결, 언어, 고요, 휴식)을 테마로 하는 각각의 장이 독립된 작품처럼 구별되면서도, 서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개성과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녹아있어 연출의 합이 돋보인다.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 (사진_김혜림)

1장(사랑의 불가능)을 이끄는 김민영의 음악은 거문고가 지닌 매력으로 관객이 공연에 쉽게 몰입하게 한다. 뜯고 튕기고 켜고 문지르는 등 다채로운 주법으로 연주자의 기량을 증명하며 객석의 경탄을 자아낸다. 여기에 흔들리는 수면과 달의 이미지, 발밑에서 떠도는 그림자, 루프를 활용해 중첩되는 소리들은 내면에서 점차 퍼지는 어떤 웅성거림을 발견하게 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자신을 향한 ‘자기애’적 모순. 이것은 2장의 또 다른 불가능 테마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자기분열’이라는 감각을 강화한다.

2장(모순의 불가능)의 부제는 ‘그림자의 노래’다. 분열되는 자아와 시시각각 변하는 내면의 욕망을 안무가 이고운의 신체 움직임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때 불려지는 정가에 이상의 시 <거울>이 가사로 차용된 것도 인상적이다. 무대 위 몸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 지연시킨 동작들을 연결하고 분리시키며 스크린에 생성한 그림자들은 생성되는 동시에 실체와 더불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내 안의 욕망이란 “결국 자신의 삶에서 떼어낼 수도,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는 그림자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공연 전체에서 관객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길 부분을 꼽자면, 3장(순결의 불가능)이 아닐까 싶다. 스페인 테네리페 섬을 배경으로 촬영된 아트필름은 이국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신화적 내러티브를 전달한다. 디렉터 양민정이 직접 출연하기도 한 아트필름은 순결을 맹세했으나 결국 박탈당한 님프 칼리스토 이야기를 모티프로 숲과 바다, 사슴과 나비, 색색의 꽃과 같은 자연물 속에서 그 안을 누비는 두 여성의 관계성을 그린다. 순수하고 낭만적인 친밀한 연대를 표상하던 전반부의 이미지들이 되감기와 빠른 편집을 거쳐 후반부에서 억압과 공포, 파괴와 상실의 이미지로 반전되는 점이 인상 깊다. 그 내러티브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아트필름에 사용된 김민영의 음악과 배호영의 아쟁소리는 처연한 후반의 영상미와 함께 강렬하고도 긴 여운을 자아낸다.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 (사진_김혜림)

4장(언어의 불가능)에서는 양민정이 파르칼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과 자신의 창작시 <이름에게>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미디어아트와 함께 선보인다. 의미에 가닿지 않는 언어의 한계를 담담한 독백과 스쳐 지나가는 기호의 무수한 파편들로 형상화했다. 시어들은 발화할 수 없는 이름(“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고 있었으나 도저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과 발화 사이의 쉼(“쉼표는, 많은 것을, 용서해준다”)에 주목한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강대운은 무대 곳곳에서 공연의 다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한몫한다. 특히, 신체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끊임없는 좌표 변환과 기호들(4장), 착란과 도취를 형상화한 공연의 절정(5장)에서 극으로 치닫는 소리와 함께 박동하는 이미지들의 향연은 객석에서 아득한 황홀을 맛보게 한다. 5장에 이르러 관객은 분석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놓아버림, 강렬한 소리와 이미지의 해방 속에서 긴장과 이완의 리드미컬한 도취를 경험한다.

세 명의 여성 아티스트(김민영, 양민정, 이고운)의 퍼포먼스로 종식되는 6장은 ‘휴식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 어떤 고통은 끝내 씻어내지 못하고, 엉킨 채로 놓아주어야 하는 인연도 있다. ‘시위를 푼다’는 의미를 지닌 부제 ‘해현가(解弦歌)’는 ‘연도여자상여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 창작한 노래다. “연을 날려 실을 풀어/ 길게 엉킨 연을 놓아”와 같은 구슬픈 가사가, 흩날리는 꽃잎과 서로 엉켰다 풀어주는 위무의 동작들과 어울리면서 묘한 안온함을 남긴다.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 (사진_김혜림)

불가능을 형용하려는, 그 낯설고도 황홀한

‘여섯 개의 불가능’이라는 이번 공연의 제목은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작중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작중 여왕의 대사는 ‘불가능하기에 아름답고 자유로운 상상력의 힘’을 상징하는데, 이 작품은 예술적 상상력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선사할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만든다. ‘불가능을 형용’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예술로써 가능케 하려는 작업인 셈이다.

‘다원 예술’이라는 낯선 체험을 통해 관객들이 배우는 것은 기이한 해방감이다. 무언가 답을 찾고 분석하지 않는 대신 즉각적으로 느끼고 반응하며 함께 공명하는 즐거움. 뭔가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즐겁게 포기하며 내맡기는 해방감. 관객은 뭔가 닿을 듯 닿지 않는 혼란과 황홀을 차례로 경험하며, 그저 보고 듣고 느끼면 되는 내면의 감각들과 고요히 마주한다.

무대에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그래서 어느덧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무대 위 악기소리와 노래는 이미지와 공명하며 합일하고 흩어진다. 이미지들 또한 비정형의 상태로 끊임없이 박동하고 흔들린다. 고정되지 않는 무대 위의 모든 것들은 관객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는다. 관객은 공연이 제공하는 모든 감각에 젖어들면서 이 무대가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불가능을 화두로 삼았기에 더욱 와닿는 소통불가능성. 어차피 가닿지 않을 것을 전제한, 그 언저리에서 제각각 느끼고 감각하며 자신만의 체험을 만끽할 수 있는 불가능의 가능성.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형용하는 이 모순 형용의 예술은 그래서 관객 각자의 내밀한 지점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이 공연의 체험은 그래서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 된다.

다원예술공연 ‘여섯 개의 불가능’ (사진_김혜림)

그렇다면 이 공연의 의미가 개인의 주관적 체험으로만 남을까.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끝없는 충동의 부추김에 이끌리거나 저항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내부는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어둡고 음울하며, 갈등과 화해 사이에서 늘 불안정한 춤을 춘다. 그 혼돈 속에서 우리가 그나마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이 불가능이 만연하다는 점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내보일 수 없는 혼돈과 분열, 욕망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는 모순의 보편성. 그 지극히 내밀한 분열을 과감히 꺼내놓고 확장하며 직면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여섯 개의 불가능’은 그래서 보편적으로 낯설고 누구에게나 황홀한 것이 된다. 

원래대로라면 공연 중에도 무대를 일일이 분석해 메모했을 나이지만, 한 시간 남짓한 변화무쌍한 무대에 빠져드는 동안 어느새 나는 분석을 잊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공연의 기이한 특별함이 아닐까. 아마 많은 관객이 얼떨떨하게 반쯤 도취된 얼굴을 하고 공연장을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낯선 여운을 어떻게든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공연장을 나서며 나는 급히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공명하는 소리와 박동하는 이미지, 스쳐 지나가는 언어의 파편들. 차마 가 닿지 않는 것들의, 범람하는 황홀.”

공연 사진_김혜림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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